2019년 7월 28일
본문: 고린도전서 6:1-11
제목: “차라리 당하며 살자”
찬양: 내가 주인 삼은

설교 개요(Sermon Outline)

 시작하는 질문: 우리는 경쟁과 쟁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겨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챤 삶도 그러해야 할까? 아니다. 비움과 양보가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진행하는 질문: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송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1절)” 이것은 교인들
간에 일어난 다툼의 문제였다. 아마도 서로 간에 속이고 불의를 행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8절). 여기에 대해
바울은 왜 이 문제를 교회 안에서 다루지 않고 세상 법정에 고발했냐고 책망했다. 이것은 무슨 일이건 성도는
법정에 고소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혹은 세상 법은 다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만 따르라는 뜻도 아니다.
크리스챤이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은 더구나 아니다. 바울의 책망은 왜 교회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을 교회 밖까지 갖고 나갔느냐에 있다. 즉,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송사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최선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당하며 사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반문하고 있다(7절).
이것이 바울이 추천하는 최선책이다. 쟁취하고 빼앗기보다 오히려 비우고 양보하라는 것이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할까?

1. 더 고귀한 신분 때문이다
2. 더 소중한 가치 때문이다
3. 더 위대한 채움 때문이다
삶으로 떠나는 질문: 불의한 성공보다 깨끗한 패배가 더 아름답다. 세상 것을 비우면 주님은 더 값진 하늘의
것으로 채워주신다. 더 위대한 가치를 위해 나의 욕심, 나의 권리를 비울 용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