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동창회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물었습니다. “요즈음 뭐하고
있니?” “응, 전에 하던 일 계속하고 있어.” “전에 뭐했더라?” 기억이 헷갈리는 듯 질문하는 친구에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놀았잖아.”
오래 전에 유행했던 백수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요즈음 이런 대화가 다시 우리 주변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만큼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바닥을 모른채 내려 앉고, 사업은 문을 닫고,
일터는 사라지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패기를 잃고 낙담한 채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런 때 일수록 하늘을 보며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 때문에 기뻐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여건이나 형편은 언제나 가변적이었습니다. 항상 밝은 날만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 어두운
날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 무쌍한 환경의 높낮이를 따라 다닌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비로서 진정한 기쁨의 원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해서, 하박국 선지자는 민족 패망의 고통 앞에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여러분,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빈털털이가 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어떤 시련이나 상실이 와도 당황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차게 일어나 새 창조의 역사를 위해 뛰어 갑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렵긴 하지만, 이런 자세로 감사하며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