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맥스웰이 쓴 글에 보면 이런 체험담이 나옵니다. 맥스웰에게 네 살짜리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은 밤만 되면 아빠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바쁜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매일 밤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야기를 녹음했다가 밤 마다 틀어 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딸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녹음기의
스위치를 눌러 주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법이 며칠 간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
아이가 아빠에게 오더니 책을 쑥 내밀었습니다. “얘야, 너 녹음기를 어떻게 켜는지 알고 있잖니?” 이 말에 딸 아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아빠 무릎에 앉을 수는 없잖아요!”

사랑이란 음성이나 이론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접촉이 필요합니다. 손으로 만져 주고 가슴으로 안아 줄 때 비로서 사랑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도 만져 주시는 사역을 통해 많은 이적을 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 조차 꺼려하던 문둥병자를 친히 만져 주셨고(마 8:3), 베드로의 장모가 몸 져 누워 있을 때는 그녀의 손을 잡으셨으며(마
8:15), 아낙네들이 자기의 아이들을 데려오자 그 아이들을 팔에 안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요한 계시록 1:17에
보면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에게 말씀 하실 때, “그가 오른 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독한 유배자를 향한
주님의 손길(Touching hand)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접촉을 통한 실제적 사랑을 보여 주셨지만 오늘 우리의 삶 속에는 사랑의 접촉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랬기에 남편과
아내가 서로 겉돌고, 부모와 자녀, 교회와 사회가 서로 겉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날 세상이 삭막하고 서로 겉도는 이유는 사랑의 접촉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묶어 주는 힘이요, 새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더 아름다운 가정, 더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